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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7-24 16:46
[잡담] 7월 24일!!
 글쓴이 : 가납사니아래
조회 : 297   추천 : 3  
 글주소 : http://karaboard.com/157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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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같은 날.

 

 

서울에서부터 시작된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출발하는 날.

한껏 들뜬 마음의 소녀는 큰 열차 앞에서 주먹을 불끈 쥐고 한참동안 객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짐을 한 가득 가진 소녀는 부푼 기분이 긴장이 되었는지, 한숨을 푹 내쉰 뒤에 객차에 올라섰다. 

한국에서부터 유럽까지의 기차 여행. 긴 여행이지만, 그만큼 설레는 마음이 가득하였다. 

비록 휴전선으로 나뉘어있는 같은 언어의 다른 국가인 북한의 도시를 구경할 수는 없었지만, 

바깥 경치로나마 구경할 수 있으니 그것으로 만족하였다. 

이층침대가 놓인 객실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짐을 내려놓은 소녀는 난생처음 탄 침실 객차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똑똑]


문을 두들기는 소리에 소녀는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여권과 티켓 확인 부탁드립니다.


문 밖에서 들려온 승무원의 목소리에 소녀는 자신의 가방에 있던 여권과 티켓을 꺼내어 문을 열었다. 

마치 여객선이나 비행기의 승무원 같이 깔끔한 모양새의 여 승무원이 웃으며 소녀를 바라보았고, 

소녀는 자신의 여권과 티켓을 건네었다.


-강지영씨 본인 맞으시죠?

-네.


지영은 자신의 이름과 종착역인 모스크바로 향하는 티켓을 확인하는 승무원에게 씩씩한 대답을 하였고, 

승무원은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체크했다.


-배낭여행 가나 봐요?

-네. 대학 입학하면 꼭 해보려고 마음먹고 준비했거든요.

-혼자 다니면 힘들 텐데, 언니가 뭐 해줄 수 있는 건 없고, 나중에 먹을 것 좀 싸줄게요.

-정말요?

-동생 같아서..... 그럼 나중에 봐요.

-네 기품언니!


지영은 금방 승무원의 명찰을 보고는 그녀의 이름을 불러 더 살갑게 대했고, 기품 역시 싫은 기색 없이 웃어주며 

다음 객실로 향했다. 지영은 그동안 객차 밖의 멈춰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모스크바행 열차 출발하겠습니다.]


객실 안까지 들리는 안내 방송에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던 지영은 4인실이었음에도 자신 밖에 없자, 

곧장 다리를 뻗어 반대편 의자처럼 생긴 침대에 걸치고는 등을 기대었다.


-좋으다..


창 밖 너머의 풍경은 순식간에 창을 지나 사라져 가기를 반복했다. 

편하게 객실 하나를 독점한 지영으로써는 처음 하는 배낭여행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비수기를 이용한 것에 

홀로 만족감을 느끼며 벽에 기대어 스르르 잠이 들었다.


[승객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북한 내에 출국 절차로 인해 잠시 나진 역에 정차하겠사오니, 

승객여러분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


귓가에 들려오는 소리에 눈을 뜬 지영은 나진이라는 말에 재빨리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어 역 정보를 찾아보았다.


-이게 뭐야... 헝..... 5시간 넘게 기절했어,,,,,,, 바보 바보...


자신이 잠을 자버려서 북한 풍경 구경할 기회를 놓쳐버린 것에 속상한 지영은 결국에 입술을 삐죽이며 

나진 역을 바라보았다. 한국으로 돌아올 적에는 비행기를 타기로 했기에, 지영이 북한을 볼 수 있는 기회는 

이번 뿐 이어서 더욱 속상할 따름이었다. 자신에게 친절히 대해줬던 기품도 오지 않아 심심한 지영은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6박 7일간의 시베리아 열차에서 정차하는 역들에 대해 검색하였다. 도시별로 20분정도의 정차시간이어서 

역만 조금 바라보고는 나올 수도 있으니 이번에는 북한 경치를 제대로 구경 못한 것에 제대로 보상을 받자고 다짐하는 

지영이었다. 창밖에서 갑자기 소란스러운 움직임이 보이고,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 지영은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리며 살폈지만, 군복을 입은 사람들과 승무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다가 같이 객차로 올라서는 듯 

해보였다. 북한 군인과 대면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시 어깨를 움찔거렸지만, 이상하게도 얼마 안 있어 북한 군인들이 

객차에서 내리고 열차는 출발했다. 같은 말을 쓰면서 역에는 내리지도 못하게 하는 그들.


-완전 찬밥신세네.


지영은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차갑게 얼어붙은 두만강을 내려 보았다. 

블라디 보스톡까지는 이제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배고파....


얼굴을 울상처럼 구긴 지영은 간단히 귀중품을 가방에 챙기고는 식사를 하기 위해 일어났다. 

설마라는 생각이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기에 객실을 잘 정리해놓고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객실을 빠져나와 

식당 칸을 찾아 걸어갔다. 지영이 다른 객차의 문을 열자, 그 앞에 있던 화장실의 문이 스르르 열렸다.


-하아....


왼손으로 오른 팔을 꾸욱 내리 잡은 누런색 정복의 여인. 

얼굴에는 생채기가 났지만, 북한 사람 같지 않게도 큰 눈을 가진 여인은 천천히 객실을 살피다가 아무도 없는 객실로 

들어갔다. 저절로 새어나오는 신음을 겨우 막아섰지만, 눈발에 얼마나 뛰고 굴렀는지, 온 몸이 젖어 온 몸이 뜨거워져버렸다. 차가운 시베리아의 바람에 비해 열차 안에서는 반팔을 입고 다녀도 이상 할 것이 없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결국 지독하게 오른 열기에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던 그녀는 침대에 쓰러져버렸다. 쓰러지는 와중에 구석에 정리된 짐이

 보여 일어나려 했지만, 이미 정신으로도 상처와 도주로 인한 피곤과 몸살에 견디지 못하고 만 것이다.

그때 지영은 객실의 상황을 모르는 채로, 식당차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차창너머로 스쳐지나가는 러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톡이 멀지 않은 시점이었다.

지영은 식당차에 앉아 있는 동안 기품이 지나가는 것을 몇 번 보았지만, 다른 일로 바쁜 기품을 붙잡을 수는 없었기에, 

경치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짧은 식사가 끝나고 일어난 지영은 객실로 걸어가며 여기저기 눈치를 보았지만, 

역시 북한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은 열차에 타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국 사람과 북한 사람이 탈 수 있는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달랐으며, 북한 사람은 대게 화물열차에 마련된 3개정도의 객차에 타기 마련이었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보다 이용하는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베리아 열차로 부산부터 평양을 지나 모스크바까지 가는 시대에 너무 복잡한 

정치사에 지영은 약간의 불만을 느끼며 화장실에서 멈추었다. 가방에서 칫솔을 꺼낸 지영은 간단한 양치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다가, 화장실 손잡이에 묻은 붉은 자욱을 보고는 잠시 멈칫하며 손을 가져다 대었다.


-손도장 인가? 피?


지영이 물이 묻은 손으로 문지르자 얼마 되지 않은 자욱은 쉽게 지워졌다. 아무렇지 않은 듯이 화장실 문을 열어보자, 

붉은 자욱들이 몇 개 눈에 띄었다. 마치 꼬마 애들이 일부러 낙서하기 위해 장난이라도 친 것처럼. 지영은 그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고는 물을 자신이 가져온 수건에 살짝 적셔서 닦아 내기 시작했다.


-애들이 이렇게 낙서하면 고쳐줘야지. 에휴- 같은 한국 사람이니 내가 해야지.


자신의 넓은 오지랖에 볼을 부풀리면서도 붉은 자욱들을 지운 지영은 한숨을 푹 쉬고는 다른 곳에 낙서가 있는지 살펴본 후

 객실로 걸어갔다. 자신의 객실에 다다라서 문을 열려고 하는 찰나, 손잡이에 붉은 자욱이 보이자, 지영은 잠시 당황하여 

멈칫거렸다.


-애들이 객실 손잡이에도 장난을 쳤나?


고개를 돌려 다른 객실의 손잡이를 바라보았지만, 붉은 자욱이 나있는 손잡이는 지영의 객실 손잡이 뿐이었다. 

물을 약간 적셔둔 수건으로 손잡이를 닦아낸 지영은 입술을 살짝 삐죽이며 문을 열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객실에 

들어섰다. 옆 가방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문이 닫히자, 지영의 앞에 누런 북한 제복을 입은 여인이 누워 잠이 들어 있었다.


-헙!


당황한 지영은 그 자리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로 서 있다가 조심스럽게 다가갔지만, 그녀는 전혀 움직일 

모양새가 아니었다. 지영은 조심스레 그녀를 살폈다. 머리카락 몇 개가 흘러내렸지만, 훤히 보이는 이마에 제법 긴 속눈썹. 

왼쪽 광대 쪽에 난 얼마 되지 않은 듯 한 생채기. 보라색으로 변해서 입술 전체가 갈라져있었지만, 꾸미지 않아도 예쁜 얼굴

이었다. 지영은 자신의 얼굴을 한번 쓰다듬고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손에 묻은 붉은 자욱. 그제야 지영은 자신이 

화장실과 이곳에 보았던 붉은 자욱들이 아이들의 장난이 아닌 그녀의 핏자국이라는 것을 알고 어찌해야할지 몰랐다.


-어떡하지..기품언니를 불러야 하나?


당황한 지영은 문가에서 안절부절하다 나진 역에서 북한 군인들이 정신없이 무언가를 찾으며 돌아다닌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녀의 팔에 난 상처가 보이자, 지영은 조심스럽게 잠이 든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려놓았다.


-허!


뜨겁게 타오르는 이마에서 손을 뗀 지영은 그녀의 체온이 점점 더 오를 것이라는 생각에 이제까지의 모든 생각을 

지워버리며 비상약을 챙기고 그녀의 이마에 수건을 적셔 올리고 팔에 난 상처를 치료하기 식당차에 가서 약을 구해 바르는 

 이마에 땀이 맺혔지만, 그것도 알지 못한 채로 두어시간을 바삐 움직였다.


-후우.


그녀의 제복을 자신의 편한 옷으로 갈아입히며, 하라의 발에 있는 권총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침이 목으로 넘어갔지만, 

차마 건드릴 수 없어 총은 내버려둔 상채로 제복의 상의를 살펴보자, 그녀의 이름이 드디어 지영의 눈에 들어왔다.


-구하라?


방금 전에 총을 보고 긴장했던 것이 눈 녹듯이 사라지고는 자칫 웃음이 나올 뻔 했지만, 아픈 사람을 보고 웃을 수는 없어서

 옷들을 잘 정리해서 구석에 놓고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하라를 내려 보았다. 지영의 간호 덕인지, 하라의 얼굴은 점차 

편해지면서 체온도 내려가는 것 같았다. 지영은 밥도 객실에 들고 와서 먹었다. 혹시나 하라가 깨어나서 당황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으음.


잠시 머리를 기대고 지영이 잠이 들어버린 사이에, 하라는 저릿해오는 고통에 얼굴을 구기며 정신을 차렸다.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객실의 천장이 눈에 들어오고, 딱딱한 제복이 아니라 약간 몸이 편한 것이 느껴지자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당황한 그 큰 눈에 객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서 잠이 든 지영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열차는 블라디보스톡에 도착하지 않은 채로 달리고만 있었다. 하라는 팔에 난 상처가 붕대로 감싸져 있는 것도 잊은 

채로 손으로 자신의 발에 매어져있는 총을 확인하고 꺼낸 후에 객실 차창으로 복도를 한번 살핀 뒤에 한숨을 쉬고는 

지영을 바라보았다.


-이보오. 이보오.


하라가 인상을 찌푸리며 지영의 깨우자, 지영은 하라를 간호하느라 피곤한 몸을 살짝 뒤틀면서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총구를 들이미는 하라와 마주하고 말았다.


-엄마야!!

-쉿!!


놀란 지영과 겨우 지영의 입을 막은 하라의 간격이 가까워지자, 하라의 큰 눈과 지영의 큰 눈이 마주하였다.


-조용히 하시오. 해치지는 않을 테니.


지영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고, 하라는 천천히 지영의 입을 막은 손을 떼어내었다. 

하라는 다시 문 쪽에 기대어 혹시 지영의 소리에 누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 주변을 살폈다.


-괜찮아요?


지영이 앉아서 물어보자, 하라는 그저 차창너머의 복도를 경계할 뿐 이었다. 그리고 주변에 복도에 인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신이 누워있던 자리에 앉았다.


-주인이 없는 객실인 줄 알았어요.


사투리가 없는 꽤나 유창한 한국어에 지영이 당황하는 모습이 보이자, 하라는 총을 종아리에 숨기고는 목을 쓰다듬었다.


-남조선 침투 부대였거든요. 남조선 말은 영상으로 배웠어요. 간호해줘서 고마워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것도.


하라의 쑥스러워 하는 모습에 호기심이 생긴 지영이었다.


[꼬르륵]


그때 지영의 질문이 이어지지도 못한 채로 하라의 뱃속에서 커다란 뱃고동소리가 울렸다. 하라는 머쓱한지 고개를 돌려 

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기요. 혹시 몰라서 도시락 하나 챙겨놨어요.

-.......


하라는 지영이 내민 도시락에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도시락을 받아먹기 시작했다.

지영은 보온병을 꺼내어 급하게 먹는 하라에게 물을 떠주었고, 하라는 그런 지영을 바라보기보다는 일단 고픈 배를 채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름이 구하라죠? 저는 강지영이에요. 이제 스무살 됐고요.


궁금한 것이 많은 지영이 식사를 하는 하라에게 물어보자, 하라는 잠시 고개를 들어 지영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제복에서 이름을 보았을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챈 하라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스물 셋이오.

-와! 저보다 언니네요?!!


지영이 좋아하면서 손뼉을 치자, 하라는 잠시 어깨를 떨고는 당황하였다가 식사를 이어갔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이 

왜 좋은지 몰랐지만, 지영이 나쁜 의도를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에 감사하며 하라는 식사를 마치었다.


-그럼 블라디보스톡에서 내리려고요?

-그래야지요. 더 신세를 지면 위험해요.


블라디보스톡 역이 다가오자, 하라가 제복으로 갈아입으려 하였고, 지영은 못내 아쉬운 듯이 하라를 바라보았다. 

지영의 눈빛을 외면하려 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자신을 이렇게 도와주는 지영을 외면하기란 쉽지가 않았다. 

당장에 문제는 블라디보스톡에 있는 이들에 의해서 지영까지 위험해질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허나 하라의 생각과는 달리 역에 이미 깔린 북한의 사복군인들이 정차구역을 배회하고 있었으니, 하라는 역에서 내리지 

못하고 다시 지영의 객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조..조금만 더 신세 집시다.


지영은 하라가 갈아입었던 옷을 다시 내밀면서 웃었고, 하라는 제복을 벗고는 지영의 옷으로 다시 갈아입어야만 했다.


-언니는 언제부터 군대에 있었어요?

-열..일곱?

-와... 그렇게 일찍 군대에 들어가요?

-달리기를 잘했거든요.

-달리기요?


객실에서 하라와 지영의 기나긴 이야기는 끝이 날 줄 몰랐다. 생면부지로 태어난 삶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은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딱 자매와 같았다. 다음 역인 하바롭스키까지 11시간. 하라와 지영에게는 충분히 기나긴 시간이었다.


-만약에 언니랑 나랑 같은 나라였으면 진짜 친해질 수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러게요. 나도 이렇게 편하게 누구와 이야기 하는 게 처음인 것 같아요.

-나 이제 12시간 있으면 생일이거든요. 생일에 혼자 보내면 쓸쓸하잖아요.

-생일... 난 지났는데...

-언젠데요?

-13일...

-우와~! 며칠 차이 안 난다.


지영은 하라와 자신이 인연 같아서 더욱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지영은 갑자기 무언가 생각이 났는지 자리에서 일어났고,

 하라는 지영을 올려다보았다.


-기다려요! 내가 언니 생일 축하해줄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난 이런 거 얼마나 잘하는데요!


하라의 만류에도 지영은 끝내 식당 칸에 들려서 초코파이 한 박스와 초를 사왔다. 하라는 그런 지영에게 고맙고 미안함으로

 바라보았지만, 지영은 하라의 생일을 축하하고 싶은 마음이었기에, 그 하얀 얼굴에 환하게 웃으며 초코파이로 만든 케잌을

 내밀 뿐이었다.


-조금 더 좋은 거 해주면 좋은데, 제가 배낭여행 족이라 돈이 별로 없거든요. 

그래도 기회가 돼서 나중에 만나면 진짜 케잌으로 생일 축하해줄게요~ 언니 생일 축하해요~ 헤헷


하라는 생전 처음 받는 생일 축하에 결국에 고개를 숙이고는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지영은 초코파이 케잌을 옆으로 

놓고는 그런 하라는 껴안아 달래주었다.


-고마워요. 고마워요....


백야로 해가 지지 않는 러시아의 겨울. 이념이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같은 언어를 쓰는 두 사람은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달리기를 그렇게 잘했는데, 왜 달리기 선수 안 한 거에요?

-그게, 지방 출신이어서 대학에 평양에 대학에 갈 수가 없었거든. 당장에 식량을 벌려면 군대에 갈 수밖에 없었어. 

남조선 침투부대에 들어가면 더 좋았고.

-만약에 침투부대로 남한에 왔으면 언니랑 나랑 볼 수 있었을까요?

-글쎄.....

-열차도 연결되고 해서 정말 딴 나라 이야기인줄 알았거든요.


모든 게 신기하기만한 지영을 보자니 하라는 자신도 모르게 지영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았다. 지영은 하라의 손을 피하지 

않고는 눈을 감고는 그렇게 있었다.


-나도 북조선 말고 남조선에서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라가 잠시 시무룩해하자, 지영은 자신의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었다.


-언니 영화 봐요~ 영화~


활달한 지영을 보고 있자니 하라 자신도 울적한 기분을 오랫동안 가지고 있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지영이 틀어놓은 영화를 보고 있자니 무언가 하라의 어깨에 기대어졌고, 하라는 그것이 잠들어버린 지영이란 것을 알고는 

슬쩍 지영의 머리에 자신의 머리를 기대고는 눈을 감았다. 노트북에서 나오는 영화의 소리가 객실을 가득 채웠지만, 

자매처럼 서로에게 기댄 두 아가씨의 잠을 깨우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해보였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둘은 한참을 그렇게 

서로에 기대어 잠에 취해있었다.

5시간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하라는 조용히 깨어 지영을 눕히고는 지영의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난 북조선에서 태어났고, 지영씨는 남조선에서 태어났는데, 왜 이리 낯익죠. 마치 우리 만나야 되는데 못 만난 느낌이 

들어요. .... 후우- 무슨 생각하는 거야. 정신 차려.


하라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객실 문을 열고 세면장이 있는 객차 끝으로 향했다. 세면장에서 얼굴을 씻어내면서 다시 이성적으로 생각해야했다. 군대라는 곳은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었다. 자신이 이제까지 받았던 훈련 등을 기억하는 하라로서는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을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차가운 금속 물체가 자신의 목에 그리워졌다.


-많이 찾았어. 하라 동무.

-오랜만이네요. 2년 만이죠.


세면장에 거울로 드리운 그의 모습은 훤칠한 얼굴이었지만, 모자 밑으로 하라를 향해 짓는 미소는 흡사 열차 밖의 

시베리아와도 비견 될 만큼 차가웠다.


-남조선어가 편하지?

-제게는요.

-앞장서. 어딘지 대충 봤으니 딴 짓 말고.


아마도 객차마다 한명씩 아니면 두 개의 객차 사이에서 한명씩 10명 정도의 분대가 움직이고 있을 것이라고 하라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생각한다고 달라질 상황이 아니었다. 이미 2년 전부터 러시아에 나와서 

첩보활동을 하는 사람을 쉽게 꺾는다고 보장할 수는 없었다. 허나 사람이 많은 곳에서 일부러 분쟁을 만들 필요는 없다는 

것이 하라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객실의 문이 열리고 하라가 들어가자마자 그는 총구를 하라를 향한 상태로 주변을 

경계하며 문을 닫았다.


-혼잔가요?


하라의 물음에 그는 조심히 총을 수건으로 감싸며 바라보았다.


-적어도 다섯이겠지.

-따로 연락하는 군요.

-으음...


운예주와 하라의 대화소리에 지영은 눈을 비비며 일어났고, 객실에 들어와 수건으로 하라를 겨누고 있는 운예주를 

바라보았다.


-누구세요?

-남조선 아가씨는 조용하는 게 좋지.


지영은 순간 운예주와 하라의 관계가 심각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어깨를 움츠렸다.


-얘기는 다 들었어.

-됐어요.

-다음 역에서 도망가.


순간 운예주의 입에서 나온 말에 하라와 지영은 동시에 당황하여 운예주를 바라보았다.


-하바롭스크에서 아무르 강을 넘으면 중국 쪽으로 넘어갈 수 있을거야. 이 아가씨도 위험하니 같이 가도록하고. 

저쪽이 이미 아가씨도 파악해놓은 모양이니.


운예주는 하라가 미처 준비 못한 도주로를 파악해주기까지 했다.


-그럼 예주 동무는...

-이번에 부대로 소환되기로 했거든. 이게 마지막이니 똑바로 하라고.


예주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 하라는 크게 당황하여 몸을 일으켰고, 지영은 알 수 없는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예주는 다시 객실문 밖을 바라보고는 하라를 바라보았다.


-뜀박질은 잘하니, 도망치는 것은 걱정 안 해.


하바롭스크. 차가운 시베리아의 땅이자, 중국과 러시아의 경계의 도시. 예주는 그간 피로가 무거웠는지, 문에 기대어 

앉아버렸다.


-짐은 대충 싸놓아요. 내가 너무 자리를 비우면 쉽게 눈치 챌테니..


그렇게 말한 예주는 몸을 일으키고는 객실 문을 열었다.


-기회는 한번이야. 내가 도망치라고 하면 바로 도망가는 거야. 빌어먹기도 힘든 북조선 같은 곳에 다시는 오지 말고.


예주가 문을 닫고 나가자, 하라는 다리에 힘이 빠진 듯이 주저앉아 버렸다. 지영은 급하게 하라의 어깨를 잡았지만, 

멍하니 예주가 나간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하라를 보자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낙엽이 차가운 겨울에 벗겨져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들이 끝나가며 제법 큰 도시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하라는 지영의 옷을 챙기고는 자신의 군복을 구석에 보이지 않게 숨기었다.


-후우..


하라와 지영은 긴장감을 숨기지 못하고 동시에 한숨을 내쉬었고, 서로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미안해요.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해서.

-아니에요. 언니가 왠지 내가 좀 보살펴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왜요?

-왠지 이런 때가 아니면 언니가 날 너무 보살펴줬을 것 같아서요.


왠지 모를 지영의 대답에 하라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보았다. 지영은 그저 새하얀 시베리아의 눈처럼 하얀 얼굴로 

하라에게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다음 역은 하바롭스크. 하바롭스크입니다. 정차시간은 20분입니다.]


객차 안에 울리는 안내방송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하라가 주먹을 꽉 쥐자, 지영은 하라의 손을 잡아주었다. 

하라는 그런 지영은 바라보았고, 귓가에 흐르는 식은땀을 가리지 못한 지영이 어색한 미소로 하라를 바라보고 있었다. 

일반인은 평생 경험해보지도 못할 일. 하라는 그제야 지영이 이런 상황에 매우 부적격하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똑똑]


하지만 예주의 노크소리는 그런 하라를 기다려주지 않은 채로 울렸고, 곧이어 객실 문이 열리며, 예주가 객차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보였다. 하라와 지영은 예주와 반대편으로 주변을 살피며 내렸다.


[탕!!]


커다란 총성이 조용하던 하바롭스크 역을 울렸다. 지영은 그 소리가 귀를 막고는 철로 위에 주저앉았고, 하라는 겨우 지영을

 안정시키며 철로를 벗어났다. 예주가 어떻게 달아났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하지만 예주가 울린 총성으로 인해 많은 

북한군들이 예주를 쫓을 것은 확실했다. 하라와 지영은 그들이 이상한 낌새를 차리기 전에 그들의 포위망에서 조금이라도

 더 도망가는 것이 우선이었다.


-헉헉...언니....


매서운 칼바람에도 두꺼운 옷을 입고 뛰는 것은 군인이 아닌 지영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얼굴에 땀이 내리다가 하얗게 

서리처럼 얼어있는 모습에 하라는 잠시 멈춰서 얼굴을 닦아주었다. 하라는 자신 때문에 일에 말려든 지영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한 채로 그렇게 지영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탕!]


총성이 울리고 하라의 옆으로 인위적인 구멍이 생기자, 하라와 지영이 놀라 총성이 울린 방향을 바라보았다. 

털옷으로 온 몸을 입은 한 남자. 그는 검은 권총을 그대로 노출한 채로 하라와 지영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뛰어요! 어서!!

-네!!


하라의 급한 재촉에 몸과 마음이 하라처럼 급해진 지영은 크게 대답하고는 큰 짐 가방을 결국에 포기하고 하라에게 

이끌려 달리기 시작했다. 아무르강의 강변에 늘어진 가로등은 백야에 불빛도 반짝이지 못한 채로 멍하니 꽁꽁 얼어버린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라와 지영은 어느 새 하얀 백사장으로 걸어 강에 올라 뛰고 있었다. 그녀들을 쫓아오는 이도 

멈추지 않고 총성을 울리며 쫓았다. 지영이 그새 지쳤는지, 처지자 하라도 결국 자신의 발목에서 총을 꺼내어 총성을 

울리었다. 하얗게 얼어버린 강위에 천둥이 몇 번 울리자, 그도 결국에 발목이 잡혀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탄창에서의 총알을 어림짐작으로 세면서 쏘던 하라도 결국에 총알이 비어가는 것을 느끼고는 총알을 낭비할 수 없게 되었다.

 문제는 상대가 어느 정도의 총알을 가지고 있냐는 것이었다.


-지영씨...

-어..언니... 나 힘들어서 못가겠어요..

-무슨 말이에요..그게..무슨.....


지영의 갑작스러운 칭얼거림에 당황한 하라는 지영의 다리에서 시작된 붉은 빛이 강가에서부터 이어져 있는 것을 보고 

결국 그 앞에 무릎을 꿇어버렸다.


-미안해요. 그래도 나는 한국 사람이니까. 살려주겠죠?..헤헷....


자신이 아픈 상태에서도 하라 걱정을 하는 지영을 보자, 하라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지영의 다친 상처 근처 허공에서 손을

 멈추어 만지지도 못하고 떨고 있었다.


-그냥. 객실에 있지요. 왜......

-말했잖아요. 우리 더 친해질 것 같다고.


바보 같은 이유에 하라는 작게 실소하고는 눈 속에 묻혀 사라질 것만 같은 지영의 미소를 바라만 보고 말았다.


-그만 도망 가!


멀리서 들린 외침이 하라에게 닿자, 하라는 조용히 일어나 지영의 앞으로 걸어갔다.


-어..언니!!!


지영이 당황하여 하라를 부르자, 하라는 지영이 웃은 것 마냥 환하게 웃으며 뒤돌아봤다.


-응. 지영아. 언니 여깄어.


그리고 다시 뒤돌아 보이는 하라의 뒷모습에 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는 자신의 상처로 까맣게 잃어버리고 말았다.

 하라와 지영을 향해 총성을 울리던 그도 총알이 부족한지 천천히 하라 쪽으로 걸어오며 거리를 좁혔다. 얼마 남지 않은 

기회를 쉽게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만 돌아가디요.

-싫어요.

-당에서도 참작은 해줄기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그럴 거면 이제까지 쏜 총알이 아깝잖아요.


하라의 말에 그는 조금도 미동 없이 총을 만지작거렸다. 하라도 손에 쥔 총을 손가락으로 쓰다듬으며 한 번의 기회를 노렸다.


-우리 부대는 전투 시에 마지막이 되어 항복하는 척 하며 총알 하나 남겨두는 버릇이 있디요. 간부 하나 보낼 것으로 말이디. 동무도 가지고 있디?


긴장된 하라의 머리카락 사이로 식은땀 하나가 흘러내렸다.


[탕!]


미처 하라가 대응하기도 전에 그에게서 날아온 총알이 하라의 옆을 살짝 비켜나갔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을 하기도 

전에 뒤에 잇던 지영이 생각난 하라가 고개를 돌리자 당황하여 동공이 커진 지영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보다 나이도 어리고

 군대도 경험해보지 않은 아이가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막고는 억지로 웃고 있었다.

하라는 떨어지는 입술에도 차마 입 밖으로 새어나오지 않은 말들을 밀어내고는 지영에게 달려와서 쓰러지려던 지영을 

받았다.


-...........지..지영씨.... 지영아.....

-헤.. 아직 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언니랑 더 친해질 줄 알았는데.

-마..말하지 말아요. 말하지 말라고!!!!


하라는 결국에 크게 소리치며 절규하고 말았다. 세상에 전우도 아닌 사람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잃고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언니..... 언니...... 우리 다시 만나요. 아무르강의 아무르가 한국말로 사랑이래요. 그러니까 우리 사랑 많이 받는 곳, 

사랑 많이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친하게 지내요. 우리 꼭 그럴 거에요. 그때 꼭 나 알아봐줘야 해요............ ..


천천히 줄어드는 지영의 목소리가 하라의 귓가에 머물러 사라지는 동안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는 하라는 그대로 주저 앉아 

지영을 자신의 어깨에 뉘이고는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하라의 그런 모습에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하라를 바라보았다.


-대체 뭐 배운 기요. 내 교관으로 있을 적에 제법 쓸 만하던 동무가 이 모양이라니..


하라는 그런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총구를 들었다.


[탕!]


의욕을 상실해버린 하라보다 그의 총이 빨랐고, 하라의 몸을 관통한 총알은 차가운 아무르 강 속으로 묻혀버렸다. 

그는 힘없이 떨어진 하라의 손에 있던 총을 발로 차버리고는 하라를 한심하게 바라본 후 총을 회수하여 강 끝으로 걸어갔다.


‘믿는 것은 오직 조국이요. 내 배를 불려주고 내 가족의 배를 불려주는 조국이었으니. 그 믿음이 무너진 날. 

황량한 시베리아에서 나는 기적과 만났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진실이기를. 단 일분이라도. 

지영이와 같은 믿음으로 세상을 살았으니, 그것으로 족할 뿐이리라...... ’


고통으로 비명을 질러도 부족하였지만, 아무르강의 차가운 한기는 고통마저 빼앗아 천천히 하라의 머리를 지영의 머리에 

기대게 하였다. 하얗게 부는 설풍이 조금씩 하라와 지영에게 쌓여갔다. .............


또 다른 2008년.

 


[그렇게 시작된 기적은 오늘 같은 날. 기억에도 없이, 기약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문득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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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봤습니다
18-08-11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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